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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요절암송 | 제22-18호

R기연 Master 승인 2022.12.12 14:43 | 최종 수정 2022.12.12 17:01 의견 0

셩경요절암송카드는 R기연 회원들과 크리스찬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늘 암송하도록 기획한 것입니다

성경요절은 윤용구 선생님의 "성경요절 2500"을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윤선생님은 10여년동안 지하철역에서 출근시간에 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역사학적, 통계학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거리 전도대장입니다

삽화는 최덕기(14) 화가 작품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틈틈히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글도 쓰고 있습니다. R기연을 위해서 기꺼이 작품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말씀 요절 해설은 특임위원장이신 김평래 목사(15)께서 수고하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 의식이 뛰어난 민족이었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외침을 받았으며, 그 때마다 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가 원망했다. 이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내가 너희가 고통받고 있음을 모르거나 도울 힘이 없어서 도와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그들이 고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열심히 제사(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찾았으나 의식(儀式)에 지나지 않았으며, 실생활에 있어서는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3, 4절, 거짓을 말하며,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가 없으며).

물론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에게서는, 마치 사과 나무에 사과가 열리듯 올바른 믿음에는 반드시 올바른 행함이 나오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시 145:3)

하나님의 이름은 참으로 다양하다(엘 샤다이, 여호와 라파 등). 그중 여호와란 이름은 계시와 은혜의 하나님 그리고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한편 피조물인 인간은 오감과 이성으로 경험하는 하나님을 언어로 묘사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그 모든 표현을 능가하시는 분이시다.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분이신 것이다(사 55:6,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그러기에 지금 당장은 해(害)가 되는 것 같은 일도 결국에는 우리의 구원에 쓰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과 그분의 크고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그분과 기도로 동행하며, 그분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사는 성도에게서는 모든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찬양이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시 118:21)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무(無)에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원래 없던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존재로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은혜요, 감사 제목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빚을 지신 것처럼, 기도를 통해 올려지는 우리의 요구는 반드시 응답되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물론 성도들의 모든 기도는, 비록 우리가 구한대로는 아닐지라도 반드시 100% 응답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잘못된 기도조차도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섞여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상달되며(계 8:3), 모든 기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쓰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범사(凡事,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살전 5:18). 아니 우리가 성도가 맞다면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티끌(흙)이었던 존재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아니라, 그런 우리를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시고, 자녀로 삼아 영생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구원과 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생명(영생)이시기에,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미 구원(생명)을 소유한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마귀(사탄)는 우리를 타락시켜 죄를 범하게 만들었으며, 지금도 구원받은 성도들까지 미혹하려 한다(막 13:22).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서 성도를 빼앗을 수 있는 피조물은 없기에, 성도의 구원은 결코 취소될 수 없다.

그럼에도 성도는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마귀에게 패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의 삶을 일시적으로 빼앗길 수 있으며, 그렇게되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마귀는 우리 육신을 즐겁게하는 세상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그것이 바로 힘의 원리 곧 교만이며(6절),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물들지 말고, 겸손한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잠 31:10~12)


성경에서 예수님은 신랑으로, 교회(성도)는 신부로 비유되며(계 21:2), 역사와 인생은 남편이신 하나님께서 성도를 현숙한 신부(여인)로 지어가시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숙한 여인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가 되어가야 한다(30절).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으며,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결코 되어질 수가 없다. 그러기에, 결국 신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든 인생 동안 신랑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영원히 살게될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힘과 지혜와 능력과 믿음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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