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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요절암송 | 제22-14회

R기연 Master 승인 2022.06.02 07:42 | 최종 수정 2022.06.02 07:49 의견 0

셩경요절암송카드는 R기연 회원들과 크리스찬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늘 암송하도록 기획한 것입니다

성경요절은 윤용구 선생님의 "성경요절 2500"을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윤선생님은 10여년동안 지하철역에서 출근시간에 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역사학적, 통계학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거리 전도대장입니다

삽화는 최덕기(14) 화가 작품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틈틈히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글도 쓰고 있습니다. R기연을 위해서 기꺼이 작품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말씀 요절 해설은 특임위원장이신 김평래 목사(15)께서 매주 수고하고 계십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디모데후서 2:9)


사도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요 동역자인 디모데는 지금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다. 게다가 디모데는 나이도 어렸고, 몸도건강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바울은 '나도 너보다 더한 고난을 겪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라' 말한다. 실제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참으로 많은 고난을 당했다. 세 번 태장을 맞고 한번 돌로 맞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감옥에도 여러 번 갇혔었다(고후 12:23절 이하). 그러나 그가 감옥에 매어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말씀(복음)은 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왕성하게 전해졌다.

그러므로 우리도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복음을 전하는 통로요 도구로 쓰임받는 것이며, 그렇게 쓰임 받는 동안 우리의 성화와 구원이 이루어져가는 것일뿐이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에베소서 1:5~6)


현대는 인본주의 시대이다. 아니 선악과를 따먹은 이래로 인간은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이 죄의 근원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구원도 자기 힘으로 이룰 수 있거나 하나님을 도와드려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아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며, 누가 구원받을지는 이미 창세전에 예정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신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롬 9:13).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로 택하신 것일까? 그 목적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은혜를 찬송토록 하게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저 구원받은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말씀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우해드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진정한 찬송이다.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89:34)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지자(성경)를 통해 미리 말씀하시고 행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변함이 없으시며,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그분의 언약(言約, 말씀)은 정해진 때에 반드시 이루어졌으며, 또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때로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그분은 우리에게 회초리를 대신다. 그분의 목적은 우리를 의로운 자로 만드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우리들은 회초리(고난)로 맞을 때 마치 버려진 것 같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언약이 변한 것은 아닌지, 하나님을 의심하게 된다.

아니다. 하나님께서 입술로 하신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친 아들인 증거이다(히 12:8).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상황이 아니라 말씀(언약)을 믿고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주님께서 위로해주시고, 반드시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하실 것이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에베소서 6:17)


믿음생활은 마귀(사탄)과의 영적 싸움의 연속이다. 이 싸움은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기 전부터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임이 선포된 후에는 더욱 치열해진다. 마귀의 목적은 할 수만 있다면 택함받은 백성들까지 미혹하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는 없지만, 그만큼 싸움이 치열해진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마귀와의 전투를 위해 무장을 해야하는데, 세상적인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갑주(full armor of God)를 입어야 한다(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等).

한편 우리가 취해야 하는 전신갑주 중에 유일한 공격용 무기는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단순히 성경 귀절을 많이 외울 수 있다는 사실이 훌륭한 무기가 되는 것은 아니며, 먼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며 말씀을 올바로 읽어야 하며, 특히 모든 말씀을 그리스도 예수와 그분의 십자가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모든 성경은 곧 나에 대하여 쓴 것'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 24:27). 나아가 올바로 이해된 말씀에 순종하도록 힘써야 하는데, 그것이 곧 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3:7)


우리는 마치 이 세상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인냥 살아간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우리 인생은 마치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 그렇게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가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을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의 인생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위해 잠시 허락된 훈련 과정이다. 그 과정중에서도 특히 가정은 중요한데, 우리가 처음 태어나 성장하는 곳이며, 교회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가정의 기초가 되는 부부의 삶은 매우 중요하다. 부부는 구원을 위한 동반자일뿐 아니라, 함께 자녀들을 낳고 기르는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하듯 해야하며,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해야한다.

특히 남편들은 家長으로서 연약한 그릇인 아내를 보호해야 하며,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갈 자로 알고 귀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기도가 막히지않도록 아내와 화목해야 한다. 모든 형제들과 화목해야 하는데, 하물며 아내와는 더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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