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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요절암송 | 22-13호 발간

R기연 Master 승인 2022.05.18 11:58 | 최종 수정 2022.05.18 12:47 의견 0

셩경요절암송카드는 R기연 회원들과 크리스찬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늘 암송하도록 기획한 것입니다

성경요절은 윤용구 선생님의 "성경요절 2500"을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윤선생님은 10여년동안 지하철역에서 출근시간에 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역사학적, 통계학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거리 전도대장입니다

삽화는 최덕기(14) 화가 작품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틈틈히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글도 쓰고 있습니다. R기연을 위해서 기꺼이 작품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말씀 요절 해설은 특임위원장이신 김평래 목사(15)께서 매주 수고하고 계십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18)

이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뜻(계획)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지금도 그분을 위해 그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 운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분의 피조물인 성도들 또한 내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대로,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한편 그분의 뜻은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 쓰여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다해도 그 뜻을 전부 알 수는 없으며, 안다 해도 100%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성자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말씀대로 사시는 본을 보이셨으며,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의를 전가시켜주셨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이며, 그 결과 우리는그분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므로 오직 은혜로 피조물 중에 첫 열매가 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우리 안에는 이미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신 성령이 계시기에, 우리는 능히 그런 삶을 살 수 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에 따라 창조된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만물이 우연히 생기거나 진화되어 온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타락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며, 그렇게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부인하고 스스로 하나님 되려하는 것이 죄이며, 모든 악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만물 특히 인간을 만드셨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격체이며, 만물을 다스리는 사명을 받은 인간으로부터 찬송을 받으시기위한 것이다.

찬송은 우리가 입술로 부르는 찬양(songs)을 포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오히려 그분이 지으신 뜻대로 살아내며, 그분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해 드리는 것이 진정한 찬송이다. 하나님은 全知全能하신 분이시고, 모든 것의 근원이시며, 부족함이 전혀 없으신 분이다. 그러기에 피조물인 인간이 그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드린다는 말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주신 분이시며,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알아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까지 말씀(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셨으며, 지금도 이루어가고 계시며, 앞으로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런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서는 진정한 순종의 삶이 나오는데, 그것이 진정한 찬송이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시편 34:17)


다윗은 사울 왕의 집요한 추적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그만 대적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도피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을 금방 알아보고 해치려한다. 그러자 다윗은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을 해서 가까스로 도망나오게 된다.

때론 우리도 너무 급박한 나머지 다윗처럼 호랑이 입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위기 가운데서도 의인 곧 성도들을 건져주신다. 우리가 그분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신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과정을 마칠 때까지 지켜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기도함으로써 그런 어리석은 일을 피해야 한다. 구원은 취소될 수 없지만, 그런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반드시 뼈아픈 대가를 치루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환난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며 환난까지도 믿음의 성숙을 위해 허락하시지만, 우리가 부르짖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급할 때 우리가 아버지를 찾듯이,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의 자녀인 우리가 그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시며, 우리가 그분을 부를 때 기뻐하시며 응답해 주신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고린도후서 6:6~7)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오직 복음을 위해 산 사람이기에, 믿는 사람으로서 그를 본받고 싶은 마음에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바울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살다가 갔는지를 심각히 생각해 보고 결정한 것일까? 그리고 그럼에도 자기 자녀나 자기 스스로 그런 길을 가라고 바울이라는 이름을 준 것일까?

바울 역시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도 굶으면 배고픔을 느꼈고, 매를 맞으면 아팠다. 그런데 어떻게 그 어렵고 힘든 길을 갈 수 있었을까? 스스로의 힘으로 간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끌려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은 성령에 붙들린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억지로 끌고 가시지 않으며, 우리가 자발적으로 말씀에 순종해주길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순종하는 자로 지어가시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좇아야 한다. 그렇게 자기 충만이 아니라 성령충만을 받을 때, 사랑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같은 성령의 열매가 우리 삶 속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편 128:3)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며 부른 노래이다. 그러기에 단순히 가정의 행복을 노래한 것이 아니며, 가정의 확장인 교회를 위한 노래이기도 하다.

가정은 교회의 원형이며, 교회는 가정의 확장이다. 그러기에 만약 교회 생활을 위해 가정을 희생하는 성도가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가정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는 올바른 교회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한 가정을 이끌 수 있는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가정은 이 세상에는 없다. 먼저 믿음이 전부 같을 수가 없고, 믿는다 하더라도 믿음의 성숙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말씀하셨겠는가?

가정은 주님께서 우리 믿음과 사랑을 훈련하기위해 허락하신 곳이다. 그러기에 주어진 상황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가족 각 사람이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곁에 있지 않으면,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어야, 모든 사람이 서로 완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천국을 소망하며, 인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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