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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요절암송 | 제22-12호

R기연 Master 승인 2022.05.04 10:17 | 최종 수정 2022.05.04 18:07 의견 0



셩경요절암송카드는 R기연 회원들과 크리스찬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늘 암송하도록 기획한 것입니다

성경요절은 윤용구 선생님의 "성경요절 2500"을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윤선생님은 10여년동안 지하철역에서 출근시간에 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역사학적, 통계학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거리 전도대장입니다

삽화는 최덕기(14) 화가 작품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틈틈히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글도 쓰고 있습니다. R기연을 위해서 기꺼이 작품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말씀 요절 해설은 특임위원장이신 김평래 목사(15)께서 매주 수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나라는 안식의 나라이다. 그런데 그곳은 죄를 가지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죄란 무엇인가? 곧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죄를 제하기위해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숨겨질 수 있는 죄는 하나도 없기때문이다. 그런데 그 죄를 발견하고 제거하는데 쓰이는 것이 곧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받기위해 매일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봐야 한다. 그럴 때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양날 칼같이 예리한 말씀'이 우리 죄를 도려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수술의 과정은 매우 아프고 쓰리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죄를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편 95:6)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아담처럼 선악과를 입에 물고 태어난다. 즉 모든 인간은 天上天下唯我獨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것이 곧 죄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천하만물 중에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한편 은혜로 인해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계심을 알게된 사람은, 자신을 존재케 하신 그분께 감사하며, 그분을 알고자 애쓴다. 나이가 들어가며 부모가 자신을 어떤 사랑으로 키웠는지를 아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부모님께 효도하게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아가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분의 크심을 알게되고, 그분을 경외하게 된다. 그리고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분을 경배하며, 그분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성도이며, 그렇게 무릎과 마음을 꿇고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4)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꽃길만 걸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큰 착각이다. 왜냐하면 성도란, 묵시(時空間을 초월한 세계)속에서는 이미 하나님 자녀인 존재가 다시는 죄를 짓지않는 존재로 훈련받기위해 죄가 관영한 이 세상에 잠시 보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만약 누군가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찾지않고 오직 세상적인 꽃길만 추구한다면, 그는 성도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 마침내 주님은 羊같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 즉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다. 아니 반드시 그 십자가의 길을 통과해야만 한다. 죄로 물든 이 육신이 죽지않고는 결코 죄와 관계없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로부터 환난을 아예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와 동행하며 함께 그 환난(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을 통과하시는데, 그 결과 우리는 정금같이 깨끗한 존재가 되어진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4)


이 귀절은 성도들이 매우 좋아하는 성경 귀절이다. '세상을 이긴다'니 무조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승리는 세상 사람들의 승리와는 르다. 세상 사람들은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승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의 승리는 그런 것과는 무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데, 이 모든것은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잠시 사탄의 지배 아래있으며, 죄와 악이 넘쳐흐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이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런 가운데 성도들은 믿음 곧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이런 죄악과의 싸움, 세상적인 사고방식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사탄 곧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그 승리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이미 믿음으로 주어져있다. 남자이기에 군대에 가는 것이지, 남자가 되기위해서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 가지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의 죄와 싸워야 한다. 그러면 승리는 자동적으로 따라올 것이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4)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싶어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 또는 우상의 힘을 빌어서라도 그 미래를 좀 더 낫게 만들어보려 한다. 그러기에 IT세상이라는 요즘도 그렇게 많은 우상들(idol)이 판을 치고, 점(占)을 치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거나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는 비가 오는 날도 있으며, 맑은 날도 있다. 너무 맑은 날이 오래 계속되면 땅이 메말라 생물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형통할 때는 기뻐하되, 왜 형통을 허락하셨는지 그 의미를 주님께 여쭈어봐야 한다. 그리고 힘들고 곤고할 때에도 그 상황에 매이지 말고, 왜 이런 환난이 닥쳤는지 하나님께 물어야한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신 세상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으며,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모든 것이 合力하여 善(구원)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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